커플지옥, 솔로천국!



기어헤드(gearhead)는 '기술적 심미주의자'


기어헤드(gearhead)라는 재미 있는 단어가 있다. '기술적 심미주의자' 라고 번역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 자전거를 타는 것보다도 자전거(아마도 기어)를 만지작거리고, 고치고, 개조하는 일을 좋아하는 괴짜들을 일컫는 영국 속어에서 유래된 듯싶다.

오늘날에는 자전거뿐만 아니라, 자동차, 컴퓨터 등 가슴 설레게 하는 뜨끈뜨끈한 테크놀로지 전반에 대해 쓰이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도 기어헤드다. 생산적인 일에 컴퓨터를 쓰는 시간보다, 그 컴퓨터를 조율하고 최적화하는 일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고 이에 때로는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새로운 팁이나 기발한 소프트웨어나 신선한 서비스를 발견하면 본능적으로 그 것에 빠져, 본업을 잊기도 한다. 바탕화면이나 테마나 엇비슷한 텍스트 에디터가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 오버클럭 했다고 삶의 질이 달라질까?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내게는 중요하다.

분명 상식적으로는 컴퓨터는 ‘도구’이지만, 어느 순간인지 ‘목적’의 자리를 차지한 듯한 상황으로 스스로를 몰고 간다. 나는 ‘셋팅 놀이’라고도 변명하듯 말하곤 하는데 이 것이 묘하게 즐겁다. 테크놀로지를 자신만의 상태로 최적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도(道)란 분명 있는 듯싶다. “아, 바빠 죽겠는데 내가 왜 이럴까” 하면서도 그 것에 빠져들고 정신차려 보면 내 분신과도 같은 디지털 기기의 최적 상태를 완성할 때까지 이에 매진하는 못 말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만약에 이 놀이에 만성이 생기면, 혹은 궁극의 셋팅을 이루어 내면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나선다. 근 수년 간 PC에 질린 많은 기어헤드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으로 어필하기 시작한 것들은 PDA와 스마트폰 등의 모바일 기기일 것이다. 이 것마저 마스터한 이들은 웹으로 넘어 간다.

블로그는 또 하나의 ‘기어헤드’형 장난감이다.
정작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보다 글쓰기에 최적일 듯한 블로그 시스템을 꾸미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한다. 가벼운 증상은 스킨 바꾸기에서 시작하지만, 중증은 설치형 블로그와 각종 플러그인으로 넘어 가고, 아예 블로그 시스템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오픈 소스는 심리학적으로 이해 가능한 문화 현상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흡사한 증상이 보인다면 여러분도 틀림없는 기어헤드다.


일단 축하는 드리지만, 다만 기어헤드의 본능이 컴퓨터 정도에서 멈추기를 바래야 한다. 자동차나 자전거로 넘어 가면 또 다른 파란만장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여하튼! 그러나 나는 지금 전세계의 기어헤드들에게 뜨거운 만세와 브라보를 보낸다.

왜냐하면 우리 IT 업계는 여러분들의 덕에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PC 여명기, 실리콘밸리 홈브루 클럽의 PC 애호가들은 더 없는 기어헤드들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IT 업계 도처에 숨어서 자양분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 8비트 키드들도 그럴듯한 기어헤드들이었다. 뿐만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을 밤새 리뷰하고 뜬 눈으로 신제품을 질러대는 여러분들은 미래형 기어헤드들이다. 노련한 테크놀로지 마케팅은 이러한 기어헤드들과 동고동락할 소재를 찾아 헤맨다. 기어헤드의 열정은 전국 방방 곡곡에서 자가 발전하는 입소문 광고 기지국이기 때문이다. ‘파워 유저’에서 ‘프로슈머’까지. 이들을 찬미하는 호칭만큼이나 이들의 심미안을 탐내는 기업들의 관심은 점점 더 뜨겁다.

어쩌면 컴퓨터가 대중화되고, 인터넷이 당연시되는 오늘날. 컴퓨터는 도구일 뿐이고, 기술은 경영의 시녀일 뿐일지 모른다. 기술이 기술만으로 즐거웠던 시절, 기술이 최고의 열정이었던 시절은 가버렸다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그렇지 않다는, 기술이야 말로 가장 뜨거운 열정의 근원임을 이야기하는 이들. 바로 기어헤드다.

기어헤드의 궁극이자 완성형은 선데이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다. 아마추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뭐든지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겠어”라는 근거 없는 자만심이 극대화된 형태로, 기술적 심미주의자로서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아름다움을 찾을 가능성이 가장 큰 상태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 참 즐겁다.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열정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데이 프로그래머들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잡지를 사고, 그 안의 프로그램을 입력해 보는 어린 학생들이 있었다. 예전에는 아마추어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만능기판에 납땜을 하는 아버지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괴짜지만 열정의 소유자들이었다. 점점 이러한 고전적 기어헤드 들은 점점 줄어들지만, 대신 웹에서 그리고 모바일/임베디드 영역에서 못지않은 열정을 방출하는 기어헤드들을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다행히 우리의 열정은 가까이에 있었다. 아직 많고도 다양한 기어헤드들이 있음을 알기에 여전히 마음은 즐겁고, 우리 IT의 미래도 낙관적으로 보인다.

IT업계의 선도 기업을 움직이는 것이 프로 선수가 된 기어헤드라면, IT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네 아마추어 기어헤드들이다. 기어헤드. 자랑스러워 할 만한 몸과 마음의 상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어헤드 치고 나쁜 사람 없다.”라는 얼토당토않은 지론은 지금껏 크게 틀린 바 없다.@



김국현 (IT평론가, ZDNet Korea) 2007/08/08      





Posted by CoiN

사이드바 열기